장록수의 최후 : 권력과 비극의 역사

조선의 역사에서 ‘장록수’라는 이름은 권력과 비극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인물로 남아 있습니다.

그녀는 연산군의 총애를 받으며 조정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으나, 결국에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연산군과 장록수의 관계는 단순한 애정 관계를 넘어, 조선 왕조의 정치와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친 사건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장록수가 어떻게 권력을 쥐게 되었고, 그녀와 연산군의 기행과 폭정이 어떻게 조선의 역사를 변화시켰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특히 장록수의 악행과 비극적인 최후, 그리고 이와 관련된 역사서의 기록을 통해 장록수가 남긴 교훈을 되새겨보겠습니다.

 

1. 장록수의 권력의 힘: 이병정과 노비 강아지

 

1504년 7월, 조선의 양반들에게 큰 충격과 공포를 안겨준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 사건의 중심 인물은 종 2품의 고위 관료였던 이병정입니다.

당시 이병정은 하인들을 거느리고 종로 일대를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길 한편에서 남녀 노비가 싸우고 있는 소란이 벌어졌습니다.

이병정은 고위 관료로서 노비들을 타일러 집으로 돌려보내려 했지만, 여자 노비 하나가 오히려 이병정에게 대들었습니다.

이 여자 노비는 장록수의 노비인 강아지였습니다.

이병정은 노비의 대들음에 분노하며 “내 너를 관아에 신고해 엄히 다스리겠다”고 엄포를 놓았으나, 곧 자신이 병사들에게 체포되어 의금부로 끌려갔습니다.

이는 노비가 양반에게 대들었는데도 양반이 감옥에 끌려가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곧 연산군의 귀에까지 들어갔고, 결국 이병정은 윗사람을 능멸했다는 죄로 체포되었습니다.

연산군은 장록수의 노비가 저지른 하극상은 눈감아주고 장록수의 편을 들었습니다.

조정 신료들은 “이병정에게 곤장 100대를 치고 3년의 유배령을 내리십시오”라고 권했으나, 연산군은 “이병정의 죄가 중한데 형벌이 너무 가볍지 않겠는가. 나는 교형에 처하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는가?”라고 말하며 이병정을 더욱 가혹하게 다루고자 했습니다.

‘병정이 가산을 다하여 숙용에게 뇌물 바치고 죽음을 면한 뒤에 석방되어 돌아갔다 ‘<연산군일기>

결국, 이병정은 장록수에게 뇌물을 바치고 겨우겨우 죽음을 면하고 석방될 수 있었습니다.

장록수는 이번 사건을 통해서 자신의 위세를 제대로 과시한 건 물론이고 큰 재물까지 한 몫 단단히 챙긴 겁니다.
과거에는 노비에 불과했던 장록수가 이제는 조선 양반들 전체를 위협하는 존재가 되는 겁니다.

 

장록수

2. 장록수와 연산군의 권력 남용

 

2.1. 연산군과 장록수의 기행

 

연산군은 장록수를 총애하며 그녀의 모든 요구를 들어주었습니다.

궁궐에는 날마다 새로운 흥청들이 들어왔지만, 장록수만이 연산군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았습니다.

연산군은 장록수를 이용해 조정 신료들의 부인까지 하룻밤 상대로 삼으려 했습니다.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던 그때 연산군은 연회장을 쓱 둘러보고는 장록수에게 속삭입니다.

“ 내 오늘은 저 여인이 마음에 든다.”

남편이 보는 앞에서 부인이 맘에 드니 하룻밤 상대로 내놓으라 한것입니다.

연산군이 조정신료들과 부인들을 연회 초청했을 때 누가 누구의 부인인지 잘 구별하기 위해 이런 방법까지 사용했다고 합니다.

‘연회 사대부의 아내로서 들어가 참여하는 자는 모두 그 남편의 성명을 써서 옷깃에 붙이게 하였다. ‘<중종실록>

연산군은 이름표를 보고 의정의 부인이 마음에 든다라고 하면서 장록수에게 콕 찍어서 자신의 의사를 전달했던것입니다.

그렇게 주선자가 되어준 장록수 덕분에 연산군은 마음에 쏙 드는 조정신료의 아내와 하룻밤을 보낼 수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장록수는 비윤리적인 행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면서 연산군에게 더 큰 총애를 받았던 겁니다.

장록수는 상식 밖의 행동일지라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연산군의 비위를 맞추는데 몰두했습니다.

즉 4년간 장록수는 연산군이 편하게 기댈 수 있는 곳이었고 연산군은 또 장록수의 권력을 지켜주는 든든한 뒷배가 된 것입니다.

결국 두 사람은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던 겁니다.

그러던 1505년 11월 연산군이 충격적인 명령을 내립니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사람의 잘린 머리를 궁궐의 흥청과 운평들에게 돌려보라고 한 겁니다.

머리가 잘린 사람이 큰 죄를 저지른 죄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처형된 사람이 저지른 대역죄는 바로 장록수 치마를 밟았다는 겁니다.

장록수의 치마를 밟은 사람 사람은 옥지화라는 이름의 운평이었습니다.

장록수가 예전부터 이 옥지화라는 운평이 마음에 들지 않아 단단히 벼르고 잇던 차에 마침 운평이 장록수의 치마를 밟은겁니다

연산군이 관심을 가졌던 여인이기에 장록수의 질투의 대상이 되었고 운평이 조그마한 실수라도 저지르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장록수에게 실수한 운평의 목을 베서 다른 이들의 본보기로 삼게 한 겁니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정말 공경하고 두려워하고 충성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평상시에라도 어떻게 치마를 밟는 그런 실수를 할 수가 있는가 평소에 윗사람을 무시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지”

연산군은 장록수의 옷을 밟은 것은 곧 임금인 자신의 곤령포를 밟는 것과 같다고 판단하게 된것입니다.

장록수는 자신이 후궁이라는 현실을 망각한 채 연산군이 다스리는 이 나라가 곧 나의 나라다 라는 착각에 빠지게됩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조선의 조정은 속수무책으로 망가져 가고 있었고 조정신료들은 또 어떤 어명이 내려올지 몰라 하루하루를 불안하게 보내고 있었습니다.

 

2.2. 신료들에 대한 연산군의 통제

 

연산군은 조정 신료들에게 ‘신언패’를 걸고 다니도록 명령했습니다.

신언패에는 “입은 화의 문이요, 혀는 몸을 베는 칼이다. 입을 닫고 혀를 깊이 간직하면 몸이 편안하여 어디서나 굳건하리라”는 내용이 쓰여 있었습니다.

이는 신료들이 궁궐에서 본 왕의 모습을 밖에서 떠들지 말라는 의미였습니다.

연산군은 또한 신료들에게 충성이라는 단어를 새긴 모자를 쓰고 다니라고 명령했습니다.

이 충성모자는 조정 신료들에게 큰 굴욕을 안겨주었습니다.

연산군은 이게 병적으로 심해지니까 무조건 강압적으로 누르고 모욕을 주고 굴욕을 주고라도 내 눈앞에서 복종하는 걸 자기가 왕권이 강하다고 착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2.3 연산군의 폭정 절정

 

연산군은 장록수와 간신들에게 둘러싸인 채 매일 연회에 빠져 살았고 궁궐 연회는 흥청들의 춤과 노래가 꼭 빠지지 않았습니다.

연산군의 폭정이 절정에 이른 1506년 흥청의 수가 무려 만여 명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연산군은 성균관까지 연회장으로 만들어 버리는 기행을 저지릅니다.

‘성균관을 오락을 즐기는 장소로 만들고 흥청에 음탕한 놀이 장소로 변하였다.’ <연려실기술>

연산군이 성균관을 자신의 놀이터로 만들어 버렸고 성균관을 떠난 일부 유생들을 자신의 가마꾼으로 이용했다고 합니다.

궁궐은 물론이고 성균관까지 연회장으로 변해버린 상황인 겁니다.

연산군과 장록수의 손에 나라의 기강은 완전히 무너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3 장록수의 최후: ‘중종반정’

 

동이 트기도 전인 캄캄한 새벽 갑자기 장록수의 처소 바깥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옵니다.

1506년 9월 2일 연산군의 무자비한 폭정에 못 견딘 신료들이 반정이라는 최후의 수단을 꺼내든 ‘중종반정’이 일어납니다.

신료와 환관들은 황급히 궁궐 밖으로 빠져나가고 있었고 궁궐을 지키는 군사들 역시 담을 넘어 도망가기 바빴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연산군을 버리고 도망칠 때 장록수는 5년간 동고동락한 연산군의 곁에 마지막까지 남기로 합니다.

‘하늘을 찌르던 권세도 이제 끝이구나’ 아마 자신의 최후를 직감했을 겁니다.

그렇게 폐위된 연산군은 강화 교동도로 쓸쓸히 유배를 떠나게되고 장록수의 마지막은 반정 세력에 처참히 끌려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녀는 백성들이 지켜본 앞에서 목이 잘리는 참수형을 당합니다.

그렇게 공개 처형된 이후 장록수의 시신은 길바닥에 버려집니다.

분노한 백성들이’ 나라의 고혈이 여기에서 탕진됐다’ 라고 외치면서 이 장록수 음부를 향해서 돌멩이를 던지기 시작합니다.

장록수의 음탕함이 연산군의 폭정을 불러왔다는 원망이었습니다.

한때 연산군의 마음을 얻어 온갖 권세를 누린 기생 출신 후궁 장록수에 비참한 최후였습니다.

 

마무리하며

 

연산군과 장록수의 이야기는 권력의 남용과 그로 인한 비극을 보여줍니다.

조선의 역사는 이들의 악행과 비극적인 최후를 통해 권력의 올바른 사용과 인간의 도덕적 책임을 다시금 상기시켜 줍니다.

연산군과 장록수의 이야기는 오늘날에도 중요한 교훈을 남기며,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