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록수와 연산군 : 권력과 사랑

이 글에서는 장록수가 연산군의 눈에 들게 된 과정과 그녀가 궁궐에서 권력을 어떻게 행사했는지에 이르는 과정을 상세히 살펴보겠습니다.

1. 장록수의 등장과 연산군의 관심

 

1.1. 장록수의 배경

 

장록수는 흥성 장씨 가문 출신으로, 아버지 장한필은 예종 1년 문과 시험에 합격하여 충청도 문위원의 현령이라는 지방 관료를 지낸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기생이었으며, 조선 시대에는 어머니의 신분을 따라야 했기에 장록수 역시 노비로 살아야 했습니다.

그녀는 여러 번 결혼했지만, 극심한 가난으로 인해 몸을 팔아 생계를 유지해야 했습니다.

<연산군일기>에 따르면, “집이 매우 가난하여 몸을 팔아서 생활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1.2. 장록수의 재능과 운명

 

1502년 연산군 8년, 연산군의 폭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조선 8도의 미인들을 궁궐로 불러들여 기생으로 삼고 음주 가무를 즐기려 했습니다.

이들 중 특별히 뛰어난 이들을 ‘흥청’이라 불렀고, 그 중 한 명이 장록수였습니다.

장록수는 노래와 춤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였고, 이는 곧 연산군의 눈에 띄게 만들었습니다.

연산군은 예술에 대한 감수성이 뛰어나 장록수의 탁월한 노래 실력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노래를 잘해서 입술을 움직이지 않아도 소리가 맑아서 들을 만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연산군은 시 쓰기를 좋아하여 자신의 시집을 출간할 정도로 예술에 대한 애착이 강했으며, 이는 장록수가 연산군의 관심을 끌게 만든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장록수는 탁월한 노래 실력을 갖춘 동안의 연상의 여인이었습니다.

장록수

2. 장록수의 권력 장악

 

2.1. 후궁으로의 승격

 

험난한 인생 끝에 장록수는 궁에 들어와 연산군의 총애를 받아 종 4품 숙원으로 책봉됩니다.

‘장록수가 연산군을 사로잡는 교사와 요사스러운 아양은 견줄 사람이 없었다’<연산군일기>

사람을 홀리거나 부추기는 것을 잘하며 요망하고 간사하다는 뜻입니다,

연산군의 마음을 사기 위해서 알랑거리는 말을 누구보다 잘했다는 뜻입니다

장록수가 비위를 맞추며 연산군 마음에 들긴 했는데 사실 연산군 곁엔 여자들 많았습니다.

하지만 장록수에겐 많은 여인들과는 완전히 차별화된 한방 무기가 있었습니다.

당시 장록수가 연산군을 대하는 모습이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왕을 조롱하기를 마치 어린아이 같이 하였고 왕에게 욕하기를 마치 노예처럼 하였다’<연산군일기>

연산군은 장록수와 함께 할 때 마치 어머니의 꾸지람을 들으면서 행복해하는 어린아이와 같았던 겁니다.

그리고 장록수는 연산군을 철저하게 모성애로 이용했던 겁니다

 

2.2. 권력의 남용

 

연산군의 총애를 받은 장록수는 자신의 재산을 불리는 데 집중했습니다.

연산군은 그녀의 집을 넓히기 위해 주변 집들을 철거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연산군일기>에 따르면, “장숙용의 집이 여염 사이에 있어 화재로 연소될까 염려되니 가까운 이웃 인가들을 헐어 넓혀라”고 명령했습니다.

또한, 장록수는 관선(나라의 선박)을 이용해 쌀 무역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연산군일기>에 기록된 내용에 따르면, “장록수는 관선을 이용해 남쪽에서 세금으로 올라온 쌀을 착복하여 평안도에 가서 비싸게 팔고, 특산품을 다시 실어와 팔았다”고 전해집니다.

이를 통해 장록수는 막대한 재산을 축적하게 되었습니다.

 

2.3. 장록수의 파격 혜택

 

연산군은 장록수에게 여러 차례 파격적인 혜택을 주었습니다.

예를 들어, 장록수의 딸을 돌봐주는 유모의 아들에게 관직을 하사하였으며, <연산군일기>에는 “종이를 동평관의 고직으로 영원히 정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이는 동평관에 딸린 창고 관리자의 자리를 주는 것이었으며, 신료들이 반대했지만 연산군은 이를 무시했습니다.

또한, 장록수의 형부인 김효손에게도 관직을 주었으며, “김효손을 함경도 전향 별감에 제소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는 왕이 함경도 제사를 위해 내린 향과 충문을 전달하는 임시 관직이었으며, 노비 출신인 장록수의 가족들에게도 큰 혜택이 되었습니다.

 

3. 장록수의 계략

 

3.1. 갑자사화와 벽서 사건

 

1504년, 연산군은 어머니 패비 윤씨의 죽음을 알게 되면서 ‘갑자사화’를 일으켰습니다.

이는 궁궐 내부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장록수도 이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그녀의 집 앞에 왕을 비방하는 벽서가 붙어 있었고, 이는 장록수가 연루된 사건으로 여겨졌습니다.

벽서 사건의 주범으로 연산군의 두 궁녀가 지목되었으며, 장록수는 이들을 시기해 연산군 앞에서 참소했습니다.

<연산군일기>에는 “두 사람은 모습이 고와서 록수가 마음으로 시기하여 밤낮으로 왕에게 참소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3.2. 두 궁녀의 처형

 

벽서 사건의 유력한 범인으로 지목된 수군비와 전향이라는 두 궁녀는 장록수의 참소로 인해 결국 처형당했습니다.

연산군은 “두 궁녀를 능지하라”는 명령을 내렸으며, 이는 사지를 찢어 죽이라는 처형 방법이었습니다.

또한, 두 궁녀의 부모와 형제들까지 처형당하는 비극이 벌어졌습니다.

이 사건은 장록수가 연산군의 총애를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치밀하고 잔인하게 행동했는지를 보여줍니다.

 

마무리하며

 

장록수는 연산군의 총애를 받아 후궁으로서 궁궐에서 막대한 권력을 행사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권력 남용과 궁궐 내의 갈등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연산군의 폭정 속에서 장록수의 생애는 화려하면서도 비극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