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황후: 고려출신 원나라 황후

기황후는 고려출신의 궁녀에서 원나라 황후까지 오른 인물입니다.

이 글에서는 기황후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통해 고려와 원나라의 역사를 알아보겠습니다.

기황후의 등장, 그녀의 권력 상승과 위기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 기황후의 등장과 배경

 

1.1. 고려에서의 출발

 

기황후는 궁녀 출신으로 원나라 황실의 정점인 황후까지 오른 인물입니다.

그녀는 고려 출신으로, 원나라 역사서에서는 “독만질아가 바쳐서 궁녀로 삼았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독만질아는 원나라 황실의 환관으로, 기황후를 원나라로 데려왔습니다.

 

1.2. 공녀 제도와 기황후

 

고려는 원나라의 압박에 시달리던 시기에 많은 여인을 공녀로 바쳤습니다.

공녀란 곡물로 바친 여인을 의미합니다.

원 간섭기 동안 고려는 사사건건 원나라의 눈치를 보며 정치적 압박을 받았고, 원나라는 고려를 복종시키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공녀를 요구했습니다.

기황후가 공녀였다는 명확한 기록은 없지만, 당시 고려 공녀들이 대부분 황실 궁녀로 시작한 것을 볼 때 기황후도 공녀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1.3. 독만질아와 기황후의 만남

 

독만지라 역시 기황후와 같은 고려 출신이었습니다.

고려 출신 환관은 일을 너무 잘해서 원나라 영입 대상 1순위였습니다.

고려 출신 환관들이 어찌나 일을 잘했던지 원나라에서는 이들에게 일반적인 시중을 드는 업무 외에도 황실의 재정을 관리하는 막중한 일까지 맡겼던 것입니다.

그는 황궁 각처에 적절한 인사를 배치하는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었으며, 기황후를 궁녀로 선택해 황실에 들였습니다.

기황후

2. 기황후와 원나라 황실

 

2.1. 황제 혜종과 기황후의 만남

 

기황후는 원나라 14대 황제 혜종(순제)의 곁에서 차 심부름을 담당하며 점점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혜종은 기황후의 외모가 출중했을 뿐만 아니라 지혜롭고 영리한 성품에 감탄하여 그녀를 총애하게 되었습니다.

“살구같은 눈,복숭앗빛 뺨,버드나무같은 가는 허리”

정말 예뻤다는걸 알수있습니다.

 

2.2. 황후 타나시리와의 갈등

 

혜종에게는 이미 정실 부인인 타나시리 황후가 있었습니다.

타나시리는 기황후를 질투하여 그녀를 학대하고 불로 지지기도 했습니다.

황후 타나시리는 황제인 혜종조차도 슬금슬금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아내였습니다.

황후 타나시리 집안은 당시 원나라를 쥐락펴락하던 권신의 집안이었기 때문입니다.

황후 타나시리 아버지 엘테무르는 제 입맛대로 황제를 갈아치울 정도로 원나라에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던 인물이었습니다.

혜종이 황제 자리에 올랐을 때 황후 타나시리의 아버지는 이미 죽고 없긴 했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황후 타나시리의 오빠들과 엘테모르의 측근들이 황실 요직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혜종은 기황후를 돕고 싶었어도 함부로 나설 수 없었던 겁니다.

기황후는 황후 타나시리의 모진 매질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자신에게도 강한 힘과 높은 지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2.3. 타나시리 황후의 몰락

 

타나시리의 오빠들이 역모를 일으켜 처형되면서 타나시리도 독살당합니다.

이로 인해 기황후는 황후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황후 타나시리의 죽음 이후 황후 자리를 차지한 것은 기황후가 아닌 쿵그라트족의 여인 바얀쿠트였습니다.

새로운 황후 바얀쿠트는 칭기스칸 때부터 대대로 황후를 배출한 유서 깊은 혈통을 자랑하는 고귀한 가문 출신이었습니다.

그런데 기황후가 황후에 오르지 못한 결정적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당시 원나라를 쥐락펴락했던 권신 재상 바얀의 반대가 있었습니다.

바얀이 기황후의 황후 책봉을 극구 반대하고 나선 겁니다.

바얀은 원나라의 황후는 반드시 원나라 황실과 대대로 혼인을 맺어온 집안이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자신의 신분을 문제 삼는 권신과 유력 가문의 위세 앞에 기황후의 희망은 하루아침에 산산조각이 난 것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황후의 등장으로 기황후는 남다른 불안감에 휩싸이게됩니다.

 

3. 기황후의 아들 탄생

 

바얀쿠트가 황후에 오르고 약 1년이 지났을 무렵  혜종의 첫 아들이 탄생합니다

아들의 이름은 아유르 시리다라.

혜종의 첫 아들을 낳은 사람은 바로 기황후였습니다.

새로운 황후가 생긴 뒤에도 혜종의 마음은 여전히 기황후에게 있었던겁니다.

그리고 아들이 생긴 뒤 혜종은 자신을 괴롭혀 오던 근심거리를 내려놓게 됩니다.

사실 혜종의 첫아들 아유르 시리다라가 태어나기 전 이미 혜종의 뒤를 이을 황태자는 존재했습니다.

12대 황제 운종의 아들 즉 혜종의 사촌 엘테구스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원나라 조정에서 엘테구스 황태자를 지지하는 세력이 커지면 황권이 불안해지니까 혜종이 위기를 느낍니다.

혜종은 엘테구스가 아닌 자신의 아들에게 황위를 물려주고 싶었을것입니다.

결국 혜종은 황제의 자리를 위협하던 황태자 엘테구스를 조정에서 쫓아내 보냅니다.

기왕후의 아들 아유르 시리다라의 탄생으로 원나라 왕실의 후계 구도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 겁니다.

 

3.1. 기황후의 황후 책봉

 

몇 년의 시간이 흐른 원나라 조정은 물론이고 고려까지 뒤흔드는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원이 기씨를 둘째 황후로 책봉하게됩니다.

약 3년 만에 기황후가 드디어 황제의 정실부인 황후가 된 겁니다.

기황후를 황후로 책봉 하길 바랐던 혜종이 1 황후는 그대로 둔 채 기황후를 제 2 황후로 책봉을 하는 겁니다.

이는 혜종이 자신의 황권을 강화하기 위한 전략이었습니다.

기황후는 강력한 가문이나 외척 세력이 없었기 때문에 혜종에게 위협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3.2. 권신 바얀과의 갈등

 

기황후의 황후 책봉을 강력히 반대하던 권신 바얀은 혜종에 의해 조정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바얀은 기황후의 신분 문제를 들어 그녀의 황후 책봉을 반대했지만, 혜종은 바얀을 제거하고 기황후를 황후로 임명했습니다.

 

4. 기황후의 권력과 도전

 

4.1. ‘자정원’의 설립

 

혜종은 기황후에게 황후의 지위뿐만 아니라 강력한 권력을 줄 수단인 ‘자정원’을 선물합니다.

‘자정원’은 황후로써 개인의 재물을 모으고 관리할 수 있는 재정관리기구입니다.

황후로써 시집올때 자신의 시중을 들 사람과 재물도 함께 챙겨오게되므로 황후들마다 재물을 관리하는 기구가 필요했던 겁니다.

고려에서 온 궁녀였던 기황후는 그럴 재산이 없었고, 혜종은 당시 주인이 없었던 황태후의 재산을 통째로, 기황후에게 준 겁니다.

기황후는 정통 몽골인 제 1 황후 못지않게 큰 힘과 영향력을갖게됩니다

 

4.2. 기황후의 위기와 극복

 

1348년, 신하들이 기황후를 황후에서 비로 강등시킬 것을 요구하는 상소를 올립니다.

원나라에 지진이나 홍수 같은 자연재해가 자주 일어나고 온 나라의 도적이 들끓는 게 모두 기왕후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기황후가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게 무너질 위기에 놓인 겁니다.

황후가 되고 몇 년이 지나도록 아유로 시리다라의 정식 황태자 책봉은 하염없이 미뤄지고 있었습니다.

 

마무리하며

기황후는 고려에서 원나라까지 신분을 초월하여 황후의 자리에 오른 인물로, 그녀의 삶은 한편의 드라마와도 같습니다.

그녀는 단순한 궁녀에서 출발하여 원나라 황실의 중심에 서게 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